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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퀴어 영화 <정말 먼 곳> : 홍경, 강길우, 기주봉, 기도영 : 그들이 마음둘 곳은 아직 너무 멀다 본문
사실 처음 영화의 분위기(아무 정보 없이 스틸 컷만)를 봤을 땐
세상사에 상처받은 한 남자가 목가적인 곳에서 사회를 등진 채 살아가며 인생을 깨닫는 이야기인가 했었어요.
그러다 나중에 퀴어영화인 걸 알았죠.
그러나 그런 남자가 퀴어인 것 뿐이지, 실제 전개되는 내용은 어차피 세상에 상처받은 영혼이 쉴 곳을 찾아 떠나간 곳이었기 때문에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어쩌다보니 2022년은 퀴어 영화로 시작하고 계속 연작으로 리뷰하고 있네요.
(사실 다음 영화도 퀴어물 ㅎㅎㅎ)
저 이러다 퀴어영화 전문 리뷰어가 되는 건 아닐지. (깊이와 내공이 부족하지만 나름 유입은 그쪽 장르 많다는)
쓸쓸한 한 남자의 삶. 그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낯설지만 아름다운 <정말 먼 곳>의 줄거리, 결말입니다.
강원도 화천의 아름다운 풍광이
잔인하게 느껴지는 한 남자의 현실
진우(강길우)는 강원도의 한 목장에서 일합니다.
딸인 설은 그를 '엄마'라고 부릅니다. (첨에 뭐지..? 싶었다는;;)
엄마가 없는 아이가 아빠로 보이는 남자를 엄마라고 부르는 사연은... 어쩌면 부모 중에서 자식과 가장 밀접한 관계인 어머니의 부재를 그가 대신하고 있다는 설정이겠죠.
설은 목장에서 자유롭게 양들과 함께 삶을 배웁니다.
(이또한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외롭게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을 상징하는 것 같아요)
오프닝에서 늙은 양의 죽음은 앞으로 벌어질 어떤 일들을 예감케 합니다.
목장주인 중만(기주봉)은 진우의 사정은 자세히 모르지만 그저 보듬어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의 딸인 문경(기도영)은 아무래도 진우에게 마음이 있는 듯 보이지만
진우의 반응은 그닥 탐탁치 않아 보이고...
어느날 진우의 친구인 현민(홍경)이 그를 찾아옵니다.
시인인 그는 진우가 사는 이곳에 터를 잡고 성당에서 시를 가르치며 함께 살기로 하죠.
사실 현민은 진우의 연인.
영화가 두 사람의 관계를 그려내는 시각은 그저 담담합니다.
두 사람이 연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도 충격이나 반전으로 활용하지 않고, 이성애 관계를 그리는 것과 다르지 않게 자연스레 드러내죠.
두 사람의 상황을 알게 되는 가까운 주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만은 밥상머리에서, 사무실에서 그들의 분위기를 보며 대충 감을 잡은 듯 합니다. 하지만 별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진우에게 마음이 있던 문경도 마찬가지.
설이를 찾아 진우의 집에 들어갔다가 두 사람이 한 침대에 다정하게 누워있는 모습을 목격하지만
조용히 문을 닫고 나옵니다.
진우는 현민과 함께 하는 삶이 행복하고...
그렇게 평화롭게 지낼 것만 같았던 이들에게 한 사람이 찾아옵니다.
바로 진우의 쌍동이 여동생 은영.
설이의 친엄마였죠.
그녀는 아이를 잠시 맡아달라고 진우에게 맡겼다가 잠수를 타버렸던 상황.
그랬는데 이제 터를 잡았다고 딸을 데려가겠다고 온 겁니다.
진우는 아이를 보낼 수 없고 은영은 아이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목장엔 중만의 치매 걸린 어머니가 계셨는데 그녀가 어느날 정신을 차리고 가족들에게 밥을 지어주더니
얼마 안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서 설이가 동네 아이와 놀다가 장난감으로 다투게 되자,
진우가 설이를 혼내는 과정에서 은영이 이를 막고
결국 진우와 말다툼을 벌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은영의 말실수로 진우와 현민은 아웃팅되어버리죠.
결국 그들에게 한 때는 친절하고 다정했던 마을 사람들은 등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근처 군부대의 군인들은 식당에서 두 사람을 마주치자 대놓고 혐오발언을 쏟아내고 이를 견디지 못한 진우는 발끈하고 말죠.
그런 진우를 다독이려 했던 현민에게 독한 말까지 쏟아내는 진우.
진우는 자신이 이르고자 했던 '정말 먼 곳'(세상에 없을 것 같은,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세상, 현민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이곳에서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깨져버렸고,
그 원인을 현민으로 치부해버리는 발언을 하죠.
그날밤 현민은 떠나버립니다.
뒤늦게 현민을 찾아헤매지만 그는 이미 마을을 떠난 듯 자취가 보이지 않고
진우 또한 이제는 자신을 혐오하는 마을을 떠나기로 합니다.
상대적으로 여전히 너무도 아름다운 이곳.
설이와 은영과 함께 목장을 떠나려는 순간, 문경이 나타나 설이를 찾습니다.
양 한 마리가 새끼를 출산하려고 했던 거죠.
그렇게 양 우리에 모두 모여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지켜봅니다. (끝)
영화를 보는 내내 강원도의 멋진 풍경에 정말 감탄했습니다.
제작진이 화천의 아름다운 모습을 정말 예쁘게 잘 담아냈어요.
다만, 영화는 여러 장면에서 상징들을 내포하고 있는데 그걸 따라잡기는 조금 힘듭니다.
첫 시작부터 양털을 전체 화면에 가득 채워서 한참을 보여주고,
목장에서의 양을 여러 상징을 위해 사용한 듯 하지만 그 뜻을 정확하게 가늠하기는 어렵더라고요.
제가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생사의 비유 정도?
(할머니의 죽음, 새로운 생명의 탄생)
무리에서 이탈한 양을 오래도록 포커스해서 정지된 듯 보여주는 장면이라든가,
설이가 실종되었다 발견되기 직전, 안개낀 숲이 오래도록 보였다가 진우가 나타나는 장면 등에서의 감독님이 의도하신 바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ㅎㅎ
(제가 원체 예술 영화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보니...?)
몇몇 장면에서는 즉흥연기인가 싶은 장면들도 있습니다.
특히 진우가 현민을 쏘아붙이며 독한 말을 내뱉는 트럭 씬에서는 각본이 아니라 배우들이 감정선을 따라 대사를 만든 것 같아요. (뇌피셜)
아, 특히 이 영화가 조금 더 특별하게 느낀 점은
기존의 퀴어 영화들에서 여성 캐릭터가 단순이 두 사람의 사랑을 처절하게, 혹은 더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소비되었다면,
이 영화에서는 각자의 사연과 서사가 있는 뚜렷한 캐릭터로 이야기 속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은영이 실수(혹은 무의식적인 의도)로 진우를 아웃팅시키긴 했지만, 뒤늦게나마 아이를 되찾기 위한 모정을 보여줬다면,
문경은 자신이 짝사랑했던 상대인 진우가 자신을 싫어했다기 보다는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고 나서 보인 반응(현실 인정)이 참 좋았어요. :)
저는 이 영화에서 일단 홍경 배우님이 아름다우셔서 좋았고(하하핫! 첨에 나올 때 아이돌인줄)
문경 배우님 연기가 자연스럽고 현실적이어서 좋았습니다.
알고보니 아버지 역의 기주봉 배우님 친딸이라고! +_+
어쩌면 아직은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진우같은 사람들에게 앞으로의 현실을 조금 더 따뜻해지길 바라봅니다. :)